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마르다는 마리아를 불러 예수께서 오셨으며 너를 부르신다고 말한다. 마리아는 즉시 예수께 나아간다. 마리아와 함께 위로하던 유대인들도 마리아가 나가는 것을 보고 무덤에 가는 줄 알고 따라간다. 마리아는 예수 계신 곳에 가서 그 발 앞에 엎드려 마르다가 한 말을 마리아도 한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예수께서는 우는 자들을 향해 사망에 대한 위로와 공감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시고, 죽음 앞에서 좌절하고 굴복하는 비통함 가운데 분노하신다. 그들은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좌절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분노하시지만 그들을 그리고 인류를 얼마나 사랑하시기에 눈물을 흘리신다. 모든 인류는 죽음 앞에서 초라해지고 좌절하게 된다. 아무리 예수라도 죽음을 어쩌지 못해라는 불신과 함께 늦게오신 예수님을 원망하였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죽음 앞에서 무너져버린 이들을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마리아와 유대인들도 눈물을 흘리고, 예수께서도 눈물을 흘리신다. 어쩌면 이 두 눈물은 다른 눈물일 수 있다. 나의 뜻대로 되지 않거나 세상적인 장애물에 가로막히거나 또는 죽음과 같은 세상의 슬픔에 좌절하며 주님을 원망할 때가 있다.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맞나요?", "왜 이런 시련을 내게 주시나요?", "난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건가요?"라는 등의 원망이 주께 향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과 원망은 사실 주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늦게 오신 주님이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아는 지식과 바라보는 시선이 문제인 것이다. 나는 어떠한 주님을 바라보고 있는가? 잘 알지 못하고 주님만 원망하는 삶인가? 아니면 주님이 흘리시는 눈물을 이해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는 삶인가? "하나님, 나는 의심이 많으며,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원망이 많은 자입니다. 나의 시선과 생각에 문제가 많음을 봅니다. 주님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마음과 뜻과 그리고 우리를 향한 눈물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온전히 믿으며 나아갈 수 있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