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께서 나사로를 보기위해 오셨지만 이미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다. 죽은지 나흘이나 되었으니 인간적으로 어떤 조그만 소망조차 사라진 때에 예수께서 오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나사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므로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이 있어서는 안되었다. 많은 유대인들이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해 위문을 온다. 바로 이들은 이적을 목격하여 증인이 되고 예수를 믿는 자들이 된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맞이한다. 그리고 주께서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을꺼라 말한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치유하실 능력이 있고 또한 하나님께 구하면 다 이루어짐을 알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마르다에게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하신다. 그러나 마르다는 마지막 날에 부활의 때에 다시 살아날 줄로 오해한다.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 되신다. 부활은 곧 실현이 된(realized) 부활과 종말(final eschatology)의 부활, 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곧 실현이 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적인 부활로서 성취되고, 종말의 부활은 종말에 있을 몸의 부활이다.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만물의 생명을 창조하고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신다. 예수께서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뒤에 오셨다. 즉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이 사라져버린 때에 오신 것이다. 인간은 세상 가운데 한계를 느끼거나 절망 할 수도 있다. 또한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 앞에서 누구나 한계를 느낀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과 생명이 되신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는 죽음도 뛰어넘는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는 병을 고치는 치유자를 넘어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분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또 자신의 부활로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는 말을 증명하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영원히 죽지 않게 하는 주권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종말의 때에는 몸이 부활하며, 믿는 순간부터는 영적인 부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이다.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없다. 피조물인 인간의 한계를 가지고는 창조주를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지식 안에서 머물기만 하거나 창조주를 인간의 지식으로 알려는 오류를 범한다. 마르다도 자신의 생각 안에서 한계를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았다. 바로 치유자로서의 예수님을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주인이자 전능하신 분이다. 나도 지식으로 나의 신념 가운데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와 한계 가운데 예수님을 정의하고 있지 않은가? 내 지식 안에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상황과 환경 가운데 흔들리는 믿음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을 믿으며 나아가야 한다. 말씀을 통해 주님을 더욱더 알아가며 무엇보다 말씀을 따라 살며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지존하신 주님 이름앞에 "하나님, 부활과 생명이 되시는 주님, 생명의 주관자이시며 전능하신 주를 믿으며 나아갑니다. 피조물의 지식 안에 창조주를 가두는 우려를 범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가운데 주님의 뜻을 구하고 무엇보다 주님을 알아감으로 친밀함 가운데 동행하는 인생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