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과 그림에 지쳐 쇠약해진 고흐는 파리 근교 오베르에 있는 의사 가셰에게로 찾아간다. 초반에는 정서적 위안을 얻고 열성적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가셰와 벌인 말다툼, 동생 테오에게 생계를 의존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끝내 권총 자살을 택한다.
"고통은 영원하다"
고흐는 세잔느의 지인인 의사이자 아마추어 화가였던 가셰 박사를 만나고, 그의 소개로 동네의 식당의 딸린 여인숙에 머물며 창작활동을 한다. 그는 이곳에서 동생의 가족을 초대하여 식사도 하고 아기를 안고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하며 매우 행복한 인간적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그림의 색채는 남프랑스처럼 밝았으나 소재는 초기 네덜란드의 농촌의 삶이 많다. 그러나 그림에 태양이 나타나지 않으며, 당시 그린 자화상도 한 점도 없다고 한다.
반복되는 발작과 그림에 지치고 극도로 쇠약해진 고흐는 1890년 5월 테오가 살고 있던 오베르로 거처를 옮기고 의사 가셰를 만난다. 초반에는 정서적 위안을 얻어 두어달 동안 70여점을 그려내며 몰두하지만 우울증이 점점 심해져 37세 젊은 나이로 권총 자살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테오가 지키는 임종 속에서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떠나게 된다.